바이올린은 동네 학원이나 학교의 방과 후 수업으로 시작하는데, 가끔 전공을 생각하지는 않아도 제법 성실하게 연습을 하고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학교 오케스트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앞자리에 앉고 싶어서 시작한 바이올린을 매일 조금씩 꾸준히 한 학생들이 성인 바이올린을 살 때쯤 되면, 부모님께서 입문용 바이올린보다는 조금 더 좋은 악기로 교체해 주고 싶어 하실 때가 있습니다,
제가 전공을 하는 학부형이 아닌 지인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난감한 질문이기도 하고요. 왜냐고요? 바이올린은 가격대가 몇만 원대에서 몇백억까지 그 끝을 알 수가 없고, 가격이 비싸질수록 소리보다는 골동품으로서의 가치가 매겨지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바이올린이 오래되면 그 가치가 올라가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100년 전의 입문용 악기는 100년이 지나면 100년이 지나도 아직 남아있는 입문용 악기이고, 30년이 됐어도 잘 만들어진 악기는 20년만 지나도 그 가치가 몇 배로 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1987년, 저는 차를 사려고 모은 돈이 있었습니다. 유학시절, 제일로 아쉬웠던 것은 자동차였습니다. 여기저기 악기를 메고 전공 책을 가득 넣은 백팩에 핸드백까지 이고 지고 저 넓은 캠퍼스를 다니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차를 타고 다니는 선배들이었습니다. 유학생인 제가 차를 사려면 완불해야지 할부로 구입할 수 없기에 돈을 모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차를 보러 다니는 것을 안 한 음대 친구가 저에게 악기를 하나 연주해 보라 하더군요. 당시 저는 꽤 좋은 이탈리아 올드 악기를 가지고 있었기에 친구가 연주해 보라는 악기는 그저 "바이올린"이었습니다. 별로 감흥이 없는 저에게 그 친구는 이 악기가 앞으로 무지 오를 악기라며 제가 차를 살 돈이면 그 악기를 살 수 있다며 투자를 해 놓으라 권했습니다. 평소에 그다지 친하지도 않은데 제가 차를 살 돈이 있다고 소문이 돌았서 그런가 하며 약간 무섭기도 하더군요. 저는 차를 샀고, 그 친구는 이런저런 악기를 친구들에게 권하기도 하고 자신도 악기를 이거 저것 바꾸어 가더니 나중에 시카고의 가장 큰 악기점에서 일을 하다가 사장님이 돌아가시고 사장 자리를 물려받았더군요. 그 친구가 권했던 악기는 지금은 "억"소리가 나는 악기가 돼서 경매가를 갱신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속이 쓰립니다. 차는 어떻게 됐냐고요? 쓸 만큼 쓰다 폐차했지요. 저의 아픈 악기 경험담 1번입니다.
차를 살 돈으로 악기를 산다면 악기의 가치가 뛸 수 있냐고요? 그건 정말 케이스 바이 케이스입니다. 저는 인디애나 음악대학이라는 좋은 환경에서 악기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이 주위에 있었기에 우연히 그런 악기를 접할 수 있었지만, 그런 기회는 쉽게 오는 것은 아닙니다. 누가 벼룩시장에서 중고악기를 샀는데 스트라디바리우스더라, 어떤 부잣집 노인네가 돌아가셔서 유산 정리를 하며 내놓은 300불짜리 악기가 30만 불짜리 악기이더라 하는 이야기는 저도 수도 없이 들었고, 주변에 실지로 그렇게 우연히 좋은 악기를 구입하는 것도 목격했지만, 그럴 확률은 로또에 당첨될 확률보다 적습니다. 게다가 그런 일들은 2차 대전 후에 숨겨 놓았던 악기들을 발견한다거나, 악기 가격이나 메이커들이 정리되지 않았던 197,80년대나 가능했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제 슬픈 악기경험담 1번을 들으시고 차를 바꾸지 말고 악기를 살까요 하고 물으시는 분들에게 저는 그냥 차를 사시라고 합니다. 차는 필요하지 않을 때 금방 팔 수 있는 중고시장이 형성돼 있지만, 바이올린은 골라 사는 것도 것보다 파는 것도 힘들지만, 악기가 있어도 차는 여전히 필요하니까요.
악기는 가격편차가 큰 만큼, 자신의 경제사정과 여러가지 사정을 고려하여 무리하지 않는 수준에서 악기를 산다면, 큰 실패를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자동차를 사면서 가격이 오를 것을 기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바이올린을 사면서는 악기값이 올라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계시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취미용 악기는, 내가 소리에 만족하고, 즐겨 연주하며 이에 만족할 수 있다면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악기일 것입니다.